안천칼럼9
공민왕 신당
종묘는 조선시대 최고의 국가사당이다. 국권의 정통성, 정당성을 뜻하는 최고 위상을 갖는다. 그래서 종묘대제의 초헌관은 절대로 임금님 이외에, 어떤 신하도 대행이 불가한 것이었다. 다만 임금님이 직접 모시지 못할 불가피한 때에는, 황태자 혹은 최측근 황족이 맡을 수는 있어도 원칙적으로 임금님의 친행(親行) 국가사업이었다.
몇 년전에 그 지엄한 초헌관을 함부로 썼던 무지한 사례가 있어서 큰 지탄을 받기도 했는데, 그것은 너무나 몰상식한 일이라는 상식 정도는 당연히 알아야 했었다. 매우 서글픈 일인데 일제침략 이후에 무너진 상식이 너무도 많지만,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감히 종묘대제의 초헌관을 함부로 쓴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상식 이하의 몰상식이 중인환시 속에서 백주에 버젓이 시행될 만큼 우리들의 역사감각은 퇴락했다.
그런데 그토록 중차대한 국가사당인 종묘의 맨 앞에는, 공민왕 신당(神堂)이 모셔져 있다. 그것은 조선을 세운 개국집단이 공민왕을 최고의 개국 수호신(開國 守護神)으로 모시고 있다는 뜻이다. 요즘의 후손들은 거의 감각이 무뎌졌는데, 당시로 되돌아가서 생각을 하면 그것은 흡사 박지성, 이영표가 온갖 정성을 기울여 히딩크 동상을 세운 것과 같은 것으로서, 조선을 개창한 조상들의 마음이 절실하고 뼈저리게 느껴질 것이다.
공민왕은 그렇기에 일제침략 역사왜곡의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임금님에 해당한다. 일제사학계는 태조 이성계 장군을 역사적으로 짓밟고, 최영 장군을 극도로 부각시키는 흐름을 의도적으로 강조했었다. 가능한 한 최영 장군을 영웅으로 만드는 일환으로, 이성계 장군은 최영장군과 나쁘게 대비되게 했었다. 그러나 두 장군에 대한 비교 평가는 객관적 연구라기보다는 주관적이고 의도적인 흐름이 컸다.
요즘 새로운 연구에는 공민왕의 죽음이 단순히 측근 자제위 미소년들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최영은 공민왕의 시해 이후에 정국의 주도권을 쥔 실력자로 떠올랐고, 심지어 그의 딸이 우왕의 왕비까지 되었음을 유의하면서, 정말로 최영장군의 묘소에는 풀도 나지 않는가 등을 다각도로 재검토해야 되겠다. 당시의 역사는 아직도 최종적 결론까지는 검증을 많이 필요로 한다.
공민왕도 인간이다. 인간은 실제로 누구나 신이 될 수 없다. 그렇지만 공민왕은 역사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너무나 그렇게만 나왔다. 그리하여 공민왕이 망해가던 나라의 기틀을 잡고, 몽골족에게 빼앗겼던 넓은 북방영토를 회복한 뛰어난 임금님이란 해석은 희미해졌다. 한낱 나약한 인간으로 몰아갔던 후유증이다.
공민왕도 태조 이성계 장군도 의도적으로 짓밟은 어두운 흐름 속에, 공민왕 신당은 너무나 잊혀졌다. 아니 종묘대제 초헌관을 아무나 쓴다는 정도로 무감각해졌다. 종묘에 들어서며 공민왕 신당에는 목례도 하지 않도록 망각되었다.
특히 요즘 사람들은 일제사학자들이 조선과 고려를 단절, 대결시키며 흑백논리적 흐름으로 인식을 시킨 결과로, 태조 이성계 장군과 개국신하들이 공민왕을 그토록 모셨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정서를 갖고 있다. 흡사 고려와 조선은 이민족 관계라도 되듯 생각하는 오도된 인식은 잘못된 것이며, 고려와 조선의 교체는 오늘날의 대통령 선거에 따른 정권교체와 결코 다를 것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고려에서 조선은 같은 우리나라의 승계 흐름일 뿐이다.
그러므로 몽골족, 황건적, 왜구가 연이어 국토를 유린하던 급박한 전란에 휩싸인 때를, 우리들의 객관적인 눈으로 보는 시각정립이 요망된다. 우리민족의 주체적인 역사관이 절실하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던 국난기를 수습하고 세종 르네상스를 만든 조선 개국집단들은, 공민왕을 최고의 어른이며, 최고의 임금님으로, 최고의 존경하는 지도자로 보았음이 명백하다. 공민왕 리더십이 근본적으로는 세종 르네상스의 뿌리라고 본 것이다.
일제 침략의 오도된 잔류의식을 훌훌 털어내고서 담백하고 신선한 마음가짐으로 보면, 태조 이성계 장군과 그의 아들인 정종, 태종 및 개국 신하들은 사려 깊고 예의바른 애국집단이었다. 그들은 신도읍지 한양에 종묘를 건설하면서, 고마운 마음으로 공민왕 신당을 세우는 사려깊은 결단을 내린다. 더구나 지엄한 종묘에서도 맨 앞에 아주 정중하게 깍듯이 모셨다. 위대한 이성계 리더십과 세종 르네상스는 결코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며, 겸손하게 성심껏 모시며 옷깃을 여몄다.
「이성계 장군은 공민왕을 꿈에도 잊지 않았다. 조선 개국 지도자들은 의리의 애국자들이었다. 그들은 공민왕 그 드높은 분은 우리의 자랑스럽고 거룩한 개국 수호신이시라면서, 공민왕 신당을 세웠다.」
종묘는 나라의 최고 성역이었다. 국가 제1의 거룩한 땅에 모셔진 종묘에서도, 가장 거룩한 땅에 정중하고 정중하게 모셔진 어른은, 조선개국 애국자들의 마음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었다.
「개국 수호신이시여! 고맙습니다!」
* 원문출처 : /king/default/bbs/view.php?&bbs_id=board30&doc_num=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